보라연
매일의 일상은 여행이고,여행이 곧 일상이었다 본문
어릴 적 소위 말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며 막연히 난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마치 초등학생이 멋모르고 ‘난 하버드 갈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느 날 친구에게 불평 섞인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왜 난 항상 이렇게 힘든 연애를 하게 되는 걸까,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연애하고싶다 라며.
그 때 친구가 지나가듯 했던 얘기가 아직까지 일기장에도, 내 머리 속에도 생생하다.
“평범한 연애가 어딨냐?"
어쩌면 어렸을 적부터 가져왔던 ‘특별함’과 ‘평범함’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하게 된 첫 순간이 그 때였던 것 같다. 고민 끝에 내렸던 그 때의 결론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과 했던 지극히 평범한 연애를 특별한 사람과 했던 특별한 연애로 착각했었던 것 같다’라는 것.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지극히도 평범했던,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특별했던 것이라고.
특별하다는 게 뭘까, 어렸을 적 내가 꿈꿨던 특별함이란 뭘까.
그 물음은 여행에서도 여전히 이어졌었다.
여행이 길어져 매너리즘에 빠질 즈음, 왠지 반항하고싶어 여행자들이 꼭 간다는 'Must see' 장소들을 가지 않고 지도도 없이 길을 걷다 눈에 띄는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 책을 읽거나 하염없이 사람들을 쳐다보곤 했다.
칼퇴근하는 직장인 무리,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학생들, 이어폰을 끼고 어디론가 가는 분주한 사람들.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카페의 유리창 때문인지 어떤 다른 이유인지 그들과 나는 분명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들과 절대 섞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시간과, 낯선 장소에서의 낯선 생각이 좋다.'
카페에 앉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일상을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던 그 사람들.
나에게 '낯섬'으로 정의된 그 공간이 그들에겐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이 펼쳐지는 공간이라는 것이 순간적으로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일상을 보내는 이 공간도 누군가에게는 여행지이고, 내가 여행을 간 곳도 누군가에겐 일상의 공간일테니까. 본질은 공간이 아닌 나 자신. 아마 서울에 여행 온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즐겁게 서울을 즐길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도 사실 그런 것들로 가득 차있는데, 사람들은 자주, 그곳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주변의 멋진 것들에 무심해지는게 아닐까. 알고보면, 매일의 일상은 여행이고, 여행이 곧 일상이었다."
카페에 앉아있던 난 모든 것이 새로워보이는 여행자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리창 밖의 사람들은 일상 속의 마음가짐을 가졌다는 것이 같은 공간 속에서 그렇게나 다를 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공간에 대한 정의가 그 공간 자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평범함과 여행의 특별함, 그 차이가 무엇일까라고 고민하던 내게 '서울에 여행 온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즐겁게 서울을 즐길 것이다.'라고 말해주는 책의 문구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결국 평범함과 특별함이라는 건 한 끗 차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린 것어서 너무나도 상대적인 것이라는 게 고민 끝에 스스로 내린 결론이다. 매일의 일상이 여행이 될 수 있듯, 여행을 가도 '나'의 상태에 따라 일상만큼 평범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어렸을 적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칭했던 그들도 하나하나 그들만의 특별함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되고 싶었던 '특별한 사람'이 알고보니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버드와 상관없이, 일상을 여행처럼 특별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특별한 사람'이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어제와 같은 하루를 살더라도 '오늘은 어제 못봤던 꽃이 폈네. 오늘은 특별한 날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 결국 남들이 보기엔 다 평범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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