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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연

To go: 깊은 여행 본문

기록/기록하는 여행

To go: 깊은 여행

보라연 2021. 11. 4. 16:48
어른이 된 우리에게는 이제 두 가지 임무가 있다. 곧, 가는 것과 되는 것(to go and to be)이다. 성숙을 위한 첫 번째 임무는 도전, 공포, 위험 그리고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는 것이다. 두 번째 임무는 그것에 대해 인정을 받건 그렇지 않건 간에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인정은 다른 사람의 마음 안에 나의 투사(projection)가 함께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데이비드 리코, '사랑이 두려움을 만날 때'

 

성숙을 위한 첫 번재 임무, To go. 

어디론가 가는 것. 도전, 공포, 위험 그리고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는 것. 간다는 서술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명사는 아마도 '여행'이 아닐까. 

 

여행은 항상 나의 꿈이였다. 

 

꿈이여서 그랬을까, 직접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기까지는 조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댈 수 있는 핑계는 많았다. 친구랑 같이 가고 싶은데,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너무 바쁘고 그 정도의 시간을 낼 수가 없다. 돈이 없다... 등등. 문득 책에서 본 듯한 구절이 떠오른다. '여행은 돈,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그렇다. 난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실 난 여행을 '많이' 다녀온 사람은 아니다. 도전, 공포, 위험. 그것들에도 불구하고 혼자 훌쩍 떠날만한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아직도 혼자 어딜 가기 전엔 오만 가지 상상을 하며, 일어날 법한 안좋은 모든 상황들을 걱정하고, 잠에 쉽사리 들지 못한다. 하지만 이젠 알았다. 떠나면 어떻게든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댓가는 엄청나다는 것을.

 

세상보다 내 우주가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비슷한 감정이 맴돌고, 하루의 시작과 끝이 더이상 기쁘거나 슬프게 생각되지 않을 때,
그리고 매일 어느 정도의 슬픔이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을 때,
그래서 아마도 영원히 무언가 포기할 수도 시작할 수도 없을 것 같은, 그런 때
나는 여행을 갔다.

 

 

그래서 난 넓은 여행을 하진 않았지만, 깊은 여행을 했다. 

 

처음으로 홀로 내일로 여행을 가기 전, 일정을 짜거나 숙소를 잡는 게 보통의 일이지만 난 서점에서 우연히 본 책 한 권을 놓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여행자'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가득찬 보통의 여행 에세이와 달리 이 책엔 4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여행에서 느꼈던 '어떤 것'에 대해 쓴 짧은 글들이 모여있었다. 뭔가 대단한 곳, 말 그대로 누구나 인정할 법한 '여행지'에 관한 여행 에세이가 보통이라면, 이 책에 담긴 생각들이 나온 배경은 정말 다양했다. 심지어 인천공항에 대해 쓴 여행 에세이 글도 담겨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그 책을 읽으며 느꼈다. 여행은 많이 가거나, 길게 가거나, 많이 경험하는 넓은 여행만큼, 짧거나 많은 곳을 가지 않더라도 의미를 찾아가는,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며 걷는 깊은 여행도 매력있고 가치있다는 것을. 

 

그렇게 내일로, 유럽 여행, 그리고 짧았던 몇몇의 여행들을 떠나며 여행 속에서 찾았던 의미들, 질문들, 생각들이 일기장에 쌓이고 쌓였다. 그리고 그 글들은 무언가 용기가 필요한 일이 있을 때 꺼내보곤 했다.

 


 

또 다른 여행을 앞두고 설렌 마음에 일기를 돌아보다 글을 조금 더 예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 옷을 입듯 그 글에 맞는 사진을 입혀주고, 매무새를 가다듬듯 글을 가다듬고 싶다는 생각. 그런 생각으로 나의 여행기를 예쁘게 만들고 나누겠다는 또 다른 용기를 냈다.

 

물론 많은 경험을 한 건 아니여서 그리고 그렇게 대단한 사람과 글이 아니여서 문득 두려움도 생기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의 글을 보고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혹은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 나의 글은 빛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 

도전, 공포, 위험에 두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갔고,

조금이라도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에도 나에게 혹은 다른 사람에게까지 용기를 줄 수 있는 경험이 생겼다는 것.

그것만으로 나에겐 큰 댓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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